구찌오 구찌 GUCCI에 대한 여러가지 사실
많은 유럽의 명품이 그렇듯 구찌 또한 창립자의 이름인 구찌오 구찌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구찌의 상징적인 로고인 더블 G 또한 창립자의 이름 Guccio Guccio의 앞머리를 딴 거다.
구찌오 구찌의 장인 정신
구찌오 구찌가 태어난 집안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밀짚모자를 만드는 가업을 이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구찌는 더 이상 사람들이 밀짚모자를 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가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16살이 되던 해 런던으로 향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호텔로 유명한 사보이 호텔을 찾아갔다. 이 당시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상류층들이 즐겨 찾는 호텔이었다.
구찌오 구찌는 이 호텔에서 벨보이로 일하며, 귀족과 상류층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들의 문화는 어떤지 볼 수 있었다. 이들의 다양한 고급 가방을 접하면서, 구찌는 부자들을 위한 가죽 가방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사보이 호텔에서 5년 동안 일하고 나서 다시 이탈리아 피렌체로 귀향한다.
피렌체는 이 당시에도 전 세계 최고의 가죽 공방들이 여러 곳 있었다. 구찌는 피렌체의 가죽 공방으로 들어가 벨보이로 일했던 5년 간 귀족들의 스타일을 직접 만들기 위해 거의 20년간 기술을 갈고닦았다. 구찌의 나이가 40이 되던 1921년 드디어 피렌체에서 본인의 이름을 딴 매장 G. GUCCI를 오픈하게 된다.
처음에는 승마 위주의 가죽 제품을 만들다가 점차 가방, 신발, 벨트 등 다양한 분야로 제품을 확장해 나가면서
구찌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때 구찌의 장남 알도 구찌는 천재적인 경영 수완을 발휘하면서 브랜드 구찌를
미국, 일본, 홍콩 등 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게 된다.
구찌의 몰락과 부활
잘 나가던 구찌가 2세 경영에서 3세 경영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가족 간의 불화가 생기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구찌 가문의 저주', 가족끼리 청부살인마저 의뢰하는 ㄹㅇ 막장 집안.. 게다가 3세 구찌 가문 중 파올로 구찌는 자신만의 저렴한 브랜드 "파올로 구찌"를 만들면서 구찌의 명성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런 성장통을 겪으며 구찌는 재정난을 겪게 되는데, 구찌 가족들은 브랜드를 다시 살리기 위해 가족 위주 경영에서
다방면으로 능력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 이 과정에서 구찌의 경영진은 당시 29살밖에 되지 않았던 톰포드를
디자인 팀에 합류시킨다. (우리가 아는 그 톰포드가 맞다.)
이 당시 톰포드는 마크 제이콥스와 함께 뉴욕을 대표하는 천재 디자이너였다. 그의 감각은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었고, 구찌에 합류한 지 5년 만에 톰포드는 구찌의 옷, 선글라스, 향수, 광고, 매장까지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자리에 오른다. 톰 포드는 이 당시 파격을 넘어 충격적으로 섹시하고 도발적인 광고 및 컬렉션으로 단숨에 구찌를 가장 섹시한
브랜드로 살려낸다.
구찌 인수 & 디자이너 색출
톰포드는 1994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후 10년 간 구찌를 이끌면서 2002년에는 구찌의 부사장이 된다.
하지만 2004년, 지금은 케링으로 이름을 바꾼 명품 그룹은 구찌를 인수하기로 결정한다. LVMH 아르노 할배도 구찌
노렸는데 케링한테 뺏김.
현재 케링이 보유한 브랜드는 수 없이 많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것들로 나열하자면, 구찌, 보테가, 발렌시아가, 생로랑, 알레산더 맥퀸 등의 명품 그리고 푸마 같은 스포츠 브랜드까지 다양하게 가지고 있다.
케링 그룹의 경영진은 구찌가 톰포드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아니꼽게 봤다. 결국 서로 갈등을 겪고, 톰포드는 구찌를 나갔다. 이후 구찌의 10년은 프리다 지아니니가 이끌게 되는데, 이 여자는 당시 구찌 CEO의 연인이기도 했다.
톰포드의 영향력이 컸던 구찌의 컬렉션에 비해 그녀가 책임진 구찌는 컨셉도 못 잡고 옷도 구려서 구찌의 매출은 해마다 줄기 시작함. 결국 똥만 싸다가 회사와 갈등을 겪으면서, CEO 남편과 동반 퇴출된다.
갑자기 빈 디렉터의 자리로 구찌의 다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누가 될 것이냐는 추측이 많았다. 이미 레전드 찍은 애디 슬리먼부터 리카르도 티시까지 유명한 인물들은 모두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구찌가 발표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매우 뜻밖이었다. 당시 무명에 가까웠던 알렉산드로 미켈레였다. 지아니니의 측근이었지만, 워낙 내성적인 성격으로 미켈레를 아는 일반인들은 드물었다. 아무튼 구찌의 도박과도 같은 결정은 구찌 디자인에 혁신을 일으켰고, 10년 동안 추락하고 있던 구찌가 단숨에 올라오게 된다.
힙 갬성 끌어올리는 그의 다양한 시도들로 인해 스트릿패션을 주도하는 전 세계 셀럽들에게 사랑받았고,
구찌의 매출 또한 미친 듯이 올라가게 된다. 한 때 물건이 나가지 않아 세일을 해도 매장에 사람이 없던 구찌는
미켈레가 이끄는 구찌로 인해 세일을 하지 않아도 줄을 서야 하는 핫한 브랜드가 됐다.
여담으로 2016년 한국에서 가장 높은 핸드백 매출을 올린 브랜드는 구찌다. 그리고 미국 랩퍼 릴펌의 구찌갱과 랩퍼
닉네임부터 구찌메인, 비와이의 구찌 뱅크, 제시의 구찌 등 아이튠즈에 gucci 검색하면 전 세계 아티스트들의 구찌 노래가 수두룩하게 나올 만큼 트렌디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내놓을 다음 구찌 컬렉션들이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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